궤도를 도는
고광희 개인전 <숨>, 2024, 서학아트스페이스, 전주
글: 박아름빛
친구가 어제 집에 놀러오더니 모퉁이를 살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모퉁이가 살아있는 집이 아름다운 집이라며, 그것이 고수의 인테리어 팁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책상 맞은 편으로 보이는 방의 모퉁이를 보니 시들어가는 식물이 눈에 들어왔다. 넓고 둥근 잎을 가진 칼라데아 오비폴리아. 몇 년 전 작업실 건물에 버려져있던 걸 주워다 키우기 시작했다. 시들시들한것을 집으로 데려와 키웠더니, 오히려 더 엉망이 되었다. 칼라데아는 원래 열대 아메리카 정글 나무 아래에서 산다. 정글 속 무성하게 우거진 열대우림은 내리쬐는 햇빛을 차단한다. 밝지만 직사광선이 들어오지 않는 장소에 적응해온 칼라데아의 넓은 잎은 그런 환경에 살아가기 위해 최적화된 것이다. 잎에 수분을 보충해야 하기 때문에 흙에 물을 직접 주는 것보다 공기 중으로 분사해주는 것이 가장 좋다. 친구가 모퉁이 얘기를 해줘서 일까, 시든 칼라데아가 마치 단독으로 무대에 오른 것처럼 보인다.
칼라데아를 받치고 있는 쿠키통은 언젠가 이케아에서 샀던 것 같다. 이 양철로 만들어진 쿠키통에 있던 생강 쿠키는 점점 눅눅해지더니, 크리스마스 무렵 먹어치웠던 것 같다. 이제 그 안에는 이리저리 꼬여버린 여러 개의 케이블과 아답터들이 구겨진채 둥지를 틀고 있다. 마지막으로 뚜껑을 열어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칼라데아의 무게를 견디고 있다.
천장에 어설프게 달린 전구는 임시주거 공간 특유의 느낌을 준다. 그 아래로 침침한 노란 불빛이 방을 감싸지만, 창문 사이로 새어드는 바람에 한기가 돈다. 창밖은 온통 회색이다. 가끔 이렇게 날씨가 안좋은 날에는 창밖으로 사람 하나 보기가 힘들다. 덩그러니 보이는 앞집의 하얀 페인트가 벗겨진 창문과 그 주위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화분들이 모두 가짜처럼 느껴진다.
책상 위에 남겨진 여러 개의 동그란 커피 자국 옆으로, 어제 마시다 만 커피 잔이 놓여 있다. 쌓여 있는 책들 위에는 <모든 것의 여명>¹ 노란 책 표지가 보이고, 그 옆에는 한 달에 한 번 쯤 사용할까 말까 한 필름 카메라, 핸드폰 충전기, 외장하드가 있다. 책상 모퉁이에는 먹고 나서 깨끗이 씻고 라벨을 뗀 잼 병 안에 가위, 칼, 형형색색의 형광펜과 볼펜이 빽빽이 꽂혀 들어가있다. 그 뒤에는 투명한 아크릴 수납함이 보인다. 2센티미터 폭으로 나뉜 8개의 칸에는 열쇠를 잃어버린 자물쇠, 친구들과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 먹다 만 약, USB, 색색의 포스트잇, 카드 리더기, 몇 개의 디스크, 삼천 원²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수납함을 잘 산 건지는 모르겠다. 정리를 하고 싶어서 샀는데, 잡다한 물건들이 그저 네모난 공간 속에 들어가 있을 뿐이다.
물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내가 꽤나 기억에 집착하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빨라진 일주일의 속도감과 함께, 과거가 책상 위로 빠르게 쌓여가고 있다. 수납함 옆에 비스듬히 세워진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몇 년 전 여름, 고향에 갔을 때 찍은 친척 동생 사진이다. 작은 몸집의 동생이 향기 없는 여름 속에서 카메라를 든 나를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다. 같은 자리에서.
할아버지 댁에서 자고 일어나 마당으로 나오면, 장독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할머니가 늘 장독대 주변에서 분주히 일하시던 모습이 슬며시 떠오른다. 무언가 장독대로 들어가면 시간이 흐르며 진득해지고, 그 속에서 깊은 맛과 향을 지독히 뿜어낸다. 장독대를 열어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살펴볼까 했지만, 내 발걸음은 이미 마당을 지나 대문으로 나서고 있다. 풀냄새가 잔뜩 도는 하늘 아래 우리는 함께 걸어가고 있다. 예전에도 내가 할아버지를 따라 소 밥을 주러 가던 그 길이다. 바람이 불 때 마다 논밭 사이로 벼들이 고요하게 진동한다. 따뜻한 햇볕에 말라가는 풀 냄새와 발끝에 스치는 흙의 냄새가 겹쳐진다.³
조카뻘 되는 친척 동생이 오랜만에 나와 함께 나선 산책이 즐거운지, 신난 발걸음으로 나를 이끈다. 큰 나무 아래를 깡총깡총 뛰어가는 동생을 보니, 그 뒤를 따라가야 할 사람은 소년이던 나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마르고 희멀건 얼굴로 이곳을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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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 The Dawn of Everything. 나는 올 여름, 몇 달에 걸쳐 이 책을 읽었다. 때로는 지하철에서, 때로는 버스 창밖으로 붐비는 거리를 바라보며, 그들이 살았을 3만 년 전의 세계를 마음 속에 그려보았다. 고대 인류의 믿음과 생활방식은 지금의 삶과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의식만큼은 시대와 상관없이 비슷한 형태를 띤다. 고대 사회의 정교한 매장방식과 시신과 함께 발견된 유물들은 죽음을 향한 그들의 태도를 드러낸다. 초기 인류 사회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하거나 평등하지 않았다. 매장은 단순히 고인을 기리는 것을 넘어서, 사회적 위계질서, 영적 신념, 그리고 공동체적 가치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중요한 의식이었다.
²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발견하는 각 나라의 화폐들은 마치 기능을 잃은 어떤 유물처럼 낯설게 보이곤 한다.
³ 베를린에서도 종종 이 냄새를 맡을 때가 있다. 냄새는 잊고 있던 구체적인 순간이나 장소를 불현듯 떠오르게 한다. 그런데 그 기억이 되살아난 현재의 순간도 또 하나의 기억으로 남아, 그 냄새에 담긴 의미를 다시 변화시킨다. 한 번 어떤 기사에서 냄새가 기억과 감정을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이유가 후각 정보가 뇌의 변연계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변연계는 감정과 기억을 처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냄새는 다른 감각보다 훨씬 더 즉각적으로 우리의 기억에 영향을 미친다. 이 냄새는 이제 나에게 고향을 상기시키면서도 베를린 카날 주변의 나무가 우거진 길을 연상시킨다.
껏 뛰어다니지만, 지금은 동생의 뒤를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동생이 멈춰 이파리를 꺾을 때, 나도 따라 멈춘다. 이 길을 지나면 익숙한 풍경이 보일 텐데, 눈 앞의 동생이 나와 너무 닮아서 길을 잃을 것만 같다.
내 뒤로 걸어오는 아버지가 나의 등을 떠밀고, 이어 할아버지가 걸어온다. 매번 다른 배우들이 이야기를 꾸미는, 지겹지도 않게 몇 번이나 반복되는, 늘 새로운 포스터로 나타나는 뮤지컬처럼. 같은 나무 아래 다른 시간 속의 우리가 걸어가고 있다. 톤은 조금 다르게, 발걸음도 다르게, 호흡도 다르게 그곳을 지나고 있다. 삶의 모든 순간에서 나는 내가 나 자신이라는 자명함과 거기서 오는 이 세계의 신비함이 혼란스럽게 느껴진다.
지하철에 몸을 싣고 약속 장소로 향하는 나는 그저 하나의 파란 점일 뿐이다. 방향을 모색할 순 있지만, 스스로 나아가지 못한다. 지하철이 되어 다음 정류장으로 정해진 트랙을 따라 매끄럽게 움직인다. 옆으로 수없이 나 있는 다른 가능성을 향해 탈선하지 않는다는 안도감과 함께, 이동하고 있다는 어떠한 감각없이 나아간다. 창문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만이 다른 곳을 향해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작은 방 안에 퀘퀘한 점퍼 냄새가 중첩된다. 겨울이 오고 있는 냄새다. 어릴 때 기억하는 겨울의 냄새는 눈이 온 평원처럼 고요해서 어떠한 향도 가지고 있지 않다. 차갑기만 한 냄새는 온몸을 비집고 들어온다. 저 멀리 아버지가 보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 것 같다. 해가 저물어가는 중인지 오렌지빛을 머금은 풍경이 어렴풋이 머리를 스친다. 불쾌한 소리를 내며 지하철의 문이 열리고, 사람들은 미지근한 온기와 쾌쾌한 냄새만 남겨놓은 채 우르르 내린다.
고향은 내게 동그란 지구의 모든 물체를 붙잡아 두고 있는 중력같은 것이 아닐까. 모든 현상에 물리적 힘이 작용하듯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아닐까. 우주 속의 다른 모든 천체들의 영향으로 특정 궤도를 그리는 별처럼.⁴ 그리고 장손으로서 내게 주어진 일은 먼 사막 같은 곳에 불어든 바람에 파묻힌, 숨 멎은 무언가를 계속해서 표면 위로 끌어올리는 것이 아닐까. 언젠가는 숱한 세월의 바람에 퇴적층 아래로, 더 깊이 하강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누군가는 하강하던 것을 다시 꺼내어 모래를 손으로 쓸어내고 털어낼 것이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이동한다. 붐비는 사람들 안으로 나 또한 합류한다. 멀리 프리드리히 슈트라세 역이 보인다. 오렌지빛 하늘 아래, 기차역이 거멓게 그을리며 무너져 간다. 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발로 차며 몇 걸음 걷다 보니 활기가 돌고, 차가운 공기 속 따뜻한 입김이 점퍼 안으로 퍼진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캘린더를 확인한다.
복작복작하던 활기와 냄새가 지나가면 정갈한 풍경이 펼쳐진다. 푸른빛을 띠는 먹음직스러운 포도 한송이, 윗면을 평평하게 깎아 놓은 배 3개와 사과 3개, 고사리 무침과 시금치 무침, 육전, 대구전, 떡국 한 그릇과 말린 포, 간장 한 종지, 잡채, 식혜, 대추와 하얗게 깎은 밤, 곶감이 보인다. 두 개의 촛대가 상차림 양옆으로 꼿꼿하게 서있다. 제사상에 자리를 잡은 모든 음식과 식기들처럼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 서 있다. 할아버지가 점잖게 절을 하고 이어 아버지가 나와 절을 한다. 이제 내 차례다.
발걸음을 옮긴다. 좁은 슈프레 강을 끼고 앉은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거나, 에어팟을 낀 채 멀리 있는 누군가와 열렬히 떠들고 있다. 불어가 들리고 이어 독일어가 귀에 꽂힌다. 여러 언어가 교차하더니 마치 자주 듣는 앰비언트 음악처럼 공간감을 만들어낸다. 허공에 뱉어진 말들은 그 의미를 잊고 리듬과 선율을 만들고, 신경을 날카롭게 하다가도 기쁨을 준다. 목청 높은 새들과 웅얼거리는 벌떼들이 함께 있는 광활한 대도시가 묘한 안도감을 선사한다.
에스컬레이터를 한 방향으로 나란히 타고 올라오면, 방향 감각은 서서히 깨진다. 약속한 듯 일렬로 나란히 걷던 보폭은 흩어져, 각자의 궤도를 그린다. 급하게 싼 물건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 말끔한 캐리어를 잠시 옆에 두고, 핸드폰 시계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시간은 너무 느리게 흘러가는데, 주변의 사람들은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모든 말이 망상처럼 들려온다. 보이지 않는 모종의 형체들이 이 거대한 공항 안에서 이끼처럼 부유한다.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할아버지의 숨은 어디쯤 있을까. 할아버지가 힘겹게 뱉고 있을 숨을 상상해보려 하지만, 규칙적인 내 숨소리만 들려온다. 그 때 아빠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영화에서 본 어떤 효과처럼 나와 내가 있는 배경이 분리되어 다른 속도로 흘러간다. 나의 인상은 또렷하게 남아있는 반면, 그 외의 모든 것들은 가차 없이 블러 처리가 되어버린다. 아버지의 목소리 음색을 난생 처음으로 온전히 듣고 있는 것 같다. 도착시간과 출발시간으로 빼곡히 채워진 전광판이 보이면서 정신이 아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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⁴ 은하계 내의 별, 행성, 암흑 물질은 모두 중력에 의해 서로 끌어당긴다. 지구는 태양의 중력으로 태양 주위를 돌고 있으며, 달은 지구의 중력에 의해 지구 주위를 돈다. 중력은 서로가 서로를 잡아당겨 각자 일정한 궤도를 따라 움직이게 한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 너무 멀리 흩어지지 않고 서로를 유지하며 회전한다.
굉음을 내는 비행기는 금세 구름보다 높이 오른다. 내가 사는 곳들이 처음에는 뚜렷하게 보이더니, 순식간에 화질이 나빠진 화면처럼 픽셀로 변해간다. 엉덩이로 전해지는 미묘한 진동을 느끼며, 구름보다 높은 곳에 떠 있는 내 몸과 함께, 내 몸 속 장기들마저 평소보다 더 높은 곳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이다.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쉰다. 비행기 안의 특유의 냉기가 코를 타고 들어온다. 들숨과 날숨이 만들어내는 일정한 리듬이 내 몸을 질서 있게 유지시킨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마루에 들어와 각자의 방으로 흩어진다. 차가운 공기와 뜨끈한 마룻바닥 사이에 몸을 뉘여본다.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온다. 답답하게 막힌 콧구멍 사이를 따뜻한 공기가 통과한다. 얕은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내쉰다.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다. 다시 나갔다가 또 새로이 들어온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기본적인 리듬이 나를 살아있게 한다는 사실이 생경하게 느껴진다. 옆방에서 자고 있는 고모의 숨과 아버지의 숨이 얇은 벽을 뚫고 내 귓가로 걸어온다. 한데 어우러져 섞이는 우리의 숨이 시차를 두고 빛을 내는 반딧불이들처럼 어둑해진 방을 차례로 밝힌다.
엉겹의 시간이 쌓이면 결국 평면 같은 무한의 공간이 되고 마는 걸까. 종이에 목탄이 먹어지듯이, 캔버스에 물감이 비벼져 안착되듯이, 그렇게 그 자리에 흔적을 남기고 영원히 밖으로 나오지 않는 걸까. 영혼이 몸을 떠났을 때 인간이 잃는 질량은 약 21,3그램이라던데. 그 21,3그램의 그 덩어리는 공중에서 흩어질까, 여전히 세상에 남아 자리를 잡고 부유할까, 하늘로 올라갈까, 땅으로 꺼질까, 아니면 집으로 돌아갈까, 혹은 이 생 너머로 이동할까. 사람이 죽을 때 영혼은 불안정하고 흥분된 상태일까, 아니면 고요한 상태일까. 21,3그램은 죽음의 무게일까, 혹은 삶의 무게일까. 가장 어둡고 깊은 곳에서 숨골을 지나 목을 지나, 입에서 혀를 치고 지나갈까. 은밀하게 숨어 있다가 그 모습을 드러낼까. 결코 하강하지 않는 과거의 유물처럼 떠오를까. 단 한 번도 하강해본 적 없는 중력처럼 그 무게를 지탱할까. 내 뺨을 뜨겁게 데피는 열기처럼 상승할까. 장작을 태우는 연기처럼 치솟을까.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새처럼 비상할까. 매일 아침의 해처럼 웅장하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떠오를까. 빛나는 지느러미를 가진 작은 물고기 떼처럼 조용하고 신속하게 유영할까. 따뜻한 바람이 솟구쳐 올라가듯, 그 자리를 메우려 차
가운 바람이 서서히 스며들 듯, 대지를 스칠까.
강을 따라 보도블록을 걸으며 산을 바라본다. 평평하게 걷기 좋은 길을 따라 해가 저물어가는 모습을 보며 다시금 산을 바라본다. 언젠가 그때처럼 다시 산을 오를 수 있을까. 나는 어쩐지 그 곳과 영영 이별한 기분이 든다. 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의 아버지, 모두가 잠든 그 산 앞에서 나는 고개를 숙이고 침묵한다. 둥근 묘지 위에 난 잡초들을 익숙한 손길로 헤쳐내고 쓰다듬는다. 둥근 표면을 어루만지는 또 다른 손이 보인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던, 알 수 없는 역사의 조각인 족보⁵는 내가 모르는 세월 속에서도 계속될 것이다. 언젠가 묘지 옆에 또 다른 묘지가 생길 것이고, 사진은 빛이 바래질 것이다. 망각이 나를 침범하며 어떤 기억은 지워질 것이다. 기억이란 마치 나만의 독창적인 무엇처럼 느껴지지만, 결국 반복되는 숨결의 부산물에 불과하지 않은가. 누군가는 나를 기억하지 못한 채 내 묘지를 쓰다듬을 것이다. 내 묘지는 사라지고, 내 이야기는 먼지처럼 흩어져 날아갈 것이다. 나는 결국 이 연쇄 사슬 중 하나의 고리로 완결될 것이다. 이 뒤엉킴 속에는 분명 나 자신의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구별할 수
없을 것이다. 바람이 스쳐 지나가며 짙은 풀향이 코끝에 스며든다. 다시 내려가야 할 시간이다. 저무는 해 때문인지, 언젠가는이 장면을 그리워하게 될 거란 예감이 든다.⁶
그의 숨을 따라가면 내가 사는 장소, 내가 살던 장소, 상실하지도 갖지도 못하는 장소, 그리고 언젠가부터 꿈꾸기 시작하던 장소들을 만난다. 관찰자로서 나는 언제나 두 군데 이상의 장소에 동시에 존재한다. 모든 장소의 힘에 이끌리며, 나는 우주의 어느 별 하나처럼 조금씩 자리를 옮기고 궤적을 남긴다.
그의 숨을 바라보다가 내 주변을 살핀다. 네 개의 모서리가 있는 나의 방에 놓인 익숙한 물건들을 확인한다. 며칠 전 앓았던 감기 때문에 먹다 만 약이 보인다. 감기약 옆에는 투명한 잔에 홍차 티백이 찰싹 달라붙어 있다. 모니터 뒤에는 두 개의 외장 하드가 꽂혀 있고, 그 주변으로 널린 케이블들이 보인다. 쓰고 있던 펼쳐진 노트와 날짜가 적힌 포스트잇이 보인다. 그 뒤에는 여전히 수납함 속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 작은 물건들이 보인다. 그 옆에는 빈 필름 통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모니터 뒤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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⁵ 어릴 때 언젠가 아버지는 내게 우리집 족보를 보여준 적이 있는데, 나무가 뿌리를 내리듯 비슷한 이름들이 수직 방향으로 가지를 뻗고 있
었다. 그 족보를 마주한 어린 나는 시간이 가진 영속성과 그것의 공허함을 동시에 느꼈다.
⁶ 그리워하게 되었다.
테이블 램프가 고개를 떨구고 모니터 옆으로 살짝 빗겨 나와 있다. 마시다 만 물컵과 몇 개의 사진이 간격을 두고 놓여 있다.
칼라데아는 조금 더 누렇게 변한 것 같지만, 줄기는 어쩐지 전보다 더 꼿꼿해진 것 같다. 노란 빛을 내는 전구가 방 한켠을 밝
히고, 창문에는 서리가 맺혀 있다.
